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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IT

임재윤 2017. 8. 1. 12:21

『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왜 그렇게 끈덕지게 자신의 일에 매달렸을까? 그들 대부분이 사실상 달성이 불가능해 보일 만큼 큰 야망을 품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자신이 늘 부족해보였다. 그들은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들과는 정반대였다. 그럼에도 불만을 가지는 자신에게 정말로 만족을 느꼈다. 그들 각자가 비할 바 없이 흥미롭고 중요한 일을 한다고 생각했고, 목표의 달성만큼 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만족을 느꼈다. 그들이 해야만 하는 일 중에서 일부는 지루하고 좌절감을 안기고 심지어 고통스럽다고 해도 그들은 추호도 포기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열정은 오래 지속됐다. 』


 

『 길을 막 접어들었다가 그 길을 완전히 포기하는 일이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가? 지금 이 순간 얼마나 많은 러닝머신, 실내 자전거, 웨이트 기구가 전국 각지의 지하실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운동을 해보겠다고 나섰다가 한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그만두는가?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모든 친구에게 스웨터를 떠주겠다고 맹세했다가 겨우 소매 반쪽만 뜨고 바늘을 내려놓는가? 텃밭 가꾸기, 퇴비 만들기, 다이어트 하기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시작할 때는 들떠서 열심히 하다가 첫 번째 큰 장애물이나 긴 침체기를 만나자마자 영원히 포기해버리는가?

  많은 이들이 시작했던 일을 너무 빨리, 너무 자주 그만두는 듯하다. 어느 날 하루 기울이는 노력보다는 다음 날, 그 다음 날도 눈을 뜨면 러닝머신 위에 올라갈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



『 최하위 목표와 최상위 목표 사이에는 여러 수준의 중간 목표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8시 전에 집을 나서기는 하위 목표다. 이 목표는 오로지 정시 출근이라는 중간 목표 때문에 중요하다. 왜 정시에 출근하려고 신경을 쓰는가? 시간을 잘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왜 시간을 엄수하려고 하는가? 시간 엄수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것이 왜 중요한가? 훌륭한 지도자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왜냐하면..."이라는 답변을 계속 해나가다 보면 목표의 위계에서 최상위 목표에 이르게 된다. 최상위 목표는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 자체로 목적이다. 일부 심리학자는 최상위 목표를 '궁극적 관심'이라고 부른다. 나는 최상위 목표를 모든 하위 목표에 방향과 의미를 제공하는 나침반으로 생각한다. 』



=> 나의 최상위 목표는 무엇인가? 우선 새벽 5시에 일어나기라는 목표를 생각해보자. 왜 5시에 일어나는가? 새벽운동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왜 새벽운동을 하고 싶은가? 아침 시간을 활용하고 싶기 때문이다. 왜 아침시간을 활용하고 싶은가? 보다 계획적이고 실천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다. 왜 그러한 삶을 추구하는가? 한 번 사는 인생 남들보다 뜻깊은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삶을 통해 보다 나은 인간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나의 최상위 목표는 남들보다 나은 인간이 되고 싶은 것이다. 


 

2017.08.04.

 

『 첫째는 관심이다. 열정은 당신이 하는 일을 진정으로 즐기는 데서 시작된다. 내가 조사했던 그릿의 전형들도 모두 자신의 일 중에서 재미가 덜한 측면이 있었고, 전혀 즐겁지 않은 잡일이지만 참고 하는 일이 적어도 한두 가지는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자기 일에 푹 빠져 있고 일에서 의미를 발견한다. 계속 일에 매력을 느끼고 아이 같은 호기심을 내비치는 그들은 '나는 내 일을 사랑해!'라고 온몸으로 외친다.

  둘째는 연습이다. 이는 어제보다 잘하려고 매일 단련하는 종류의 끈기를 말한다. 그러니까 특정 영역에 관심을 느끼고 발전시킨 다음에는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하고 난관을 극복하며 기술을 연습하고 숙달시켜야 한다. 하루에 몇 시간씩, 몇 주, 몇개월, 몇 년동안 자신의 약점을 집중적으로 반복연습해야 한다. 그릿은 현재에 안주하기를 거부한다. 관심이 무엇이든, 이미 얼마나 탁월한 수준에 이르렀든 상관없이 그릿의 전형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보다 나아질 거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셋째는 목적이다. 자신의 일이 중요하다는 확신이 열정을 무르익게 한다. 목적이 없는 관심은 평생 유지하기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동시에 타인의 안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된다. 소수는 목적의식을 일찌감치 깨닫지만, 다수는 어떤 일에 관심이 생기고 수년 동안 절제하며 연습한 뒤에야 타인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동기를 강하게 느낀다. 그러나 그릿이 발달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내 일은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중요합니다."

  마지막 넷째는 희망이다. 희망은 위기에 대처하게 해주는 끈기를 말한다. 이 책에서는 관심, 연습, 목적 다음에 희망이 논의되지만 희망이 그릿의 마지막 단계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희망은 모든 단계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상황이 어려울 때나 의심이 들 때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우려면 맨 처음부터 끝까지 희망을 유지하는 일이 더없이 중요하다. 우리는 다양한 시점에서 크게 작게 허물어진다. 그대로 주저앉는다면 투지를 잃지만, 일어난다면 투지는 더 커진다. 』

 

 

저자는 성숙한 그릿의 전형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4가지에 대해 말한다. 관심, 연습, 목적, 희망.

우리가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져서 시작하게 되면 조금 더 나아지기 위해 연습을 하게 되고, 그렇게 연습이 쌓이면 새로운 목적이 생기고, 그 목적을 이루고자하는 희망이 만들어진다는 얘기일 것이다.

내가 책에 관심을 가져 구미지샘이라는 독서모임을 시작하게 되었고, 꾸준히 참석함으로써 독서토론 연습을 하게 됐고, 책 읽는 문화를 퍼트리고 싶다는 목적을 가지고 삼일문고에서 다른 다양한 독서모임을 알아가기 시작했고, 그리고 그 목적이 달성될 것이라는 희망이 생긴 것.

나의 경우에는 이렇게 볼 수 있을까?


 

2017.08.06

 

『 지금의 내 관점으로는, 힘들지만 의식적인 연습을 하게 만드는 주요 동기는 자신의 기술을 향상시키겠다는 의지다. 의식적인 연습에서는 100퍼센트 집중하며 현재 기술 수준을 넘어서는 난도의 과제를 의도적으로 설정한다. 연습을 시작하면서 설정한 이상적인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문제 해결'의 자세로 실행해야 할 모든 요소들을 분석한다. 그리고 피드백을 받는데, 잘못 수행한 부분을 지적한 다수의 피드백을 활용해 수정하고 다시 시도한다.

  반면에 몰입하는 동안의 지배적 동기는 완전히 다르다. 몰입 상태는 본질적으로 즐겁다. 사소한 기술의 일부가 향상됐는지 여부는 신경 쓰지 않는다. 또한 100퍼센트 집중하고 있지만 전혀 '문제 해결'의 자세로 임하는 것도 아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석하지 않고 그냥 한다. 피드백을 받지만 과제의 난도가 현재의 기술과 엇비슷하기 때문에 그 내용은 아주 잘했다는 칭찬이다. 실제로도 그렇고 완전한 통제감을 느낀다. 물 흐르듯 흘러가는 느낌이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아무리 빠른 속도로 달리고 아무리 치열하게 생각하고 있어도 몰입 상태에서는 힘을 들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시 말해 의식적인 연습은 준비 과정에서, 몰입은 실제 수행 중에 필요하다. 』

 

한 때 몰입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모든 일을 할 때 몰입을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책을 읽을 때나 공부를 할 때나 무엇인가를 수행할 때도 말이다. 그런데 위의 내용과 같이 몰입은 의식적인 연습이 바탕이 되어서 발현되는 결과라고 생각되어 진다. 그러니까 일부러 몰입을 하려고 해서 몰입이 되는 것이 아니고, 의식적인 연습을 통해 몸이 준비가 되면 실제 수행할 때 몰입이 자동적으로 발현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우리는 바로 몰입이 되길 원하지, 의식적인 연습은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아무래도 연습이라는 것이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피로감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지와 목적을 가지고 의식적인 연습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겠다.


 

2017.08.08

 

『 무엇보다도 지지해주는 부모와 요구하는 부모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흔히 엄격한 사랑을 한편으로는 애정과 존중, 다른 한편으로는 기대의 강요 사이에서 신중히 균형을 잡는 양육방식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사실 둘 다 동시에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것이 바로 스티브 영과 프란체스카 마르티네스의 부모들이 보여준 양육방식이었다. 영의 부모는 엄했지만 다정하기도 했다. 마르티네스의 부모는 다정하면서도 엄했다. 두 가족은 확실히 자녀의 관심을 가장 중시했다는 점에서 '자녀 중심'이었지만 어느 가족도 자녀 본인이 무엇을 할지, 얼마나 열심히 노력해야 할지, 언제 포기해야 할지 항상 더 옳은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

마지막 문장 '항상 더 옳은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우리는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후배나 자식들에게 항상 정답은 이것이다 라고 말을 해주는 경향이 있다. 내가 직접 다 해봤고, 다 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때와 지금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때의 선택은 그 때 나에게는 정답일수는 있었겠지만, 지금의 타인에게는 정답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조언을 할 때는 '내가 이러이러한 상황에서는 이러이러한 결정을 내렸는데, 너도 나의 경험을 참고해보길 바란다'라고 말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